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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패션에 저고리 선을 남겼습니다 — 국적 없는 SF가 되지 않으려고

고구마
고구마
8월 10일 · 읽는 데 3

울산 미래 시민 세 번째입니다. 2055년은 절제, 2085년은 과장이었는데 둘 다 증명사진 규격이었어요.

이번엔 규격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이 아니라 사는 방식으로 잡았어요. 미래 도시에서 그냥 멋있게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사이버펑크가 되지 않으려면

미래 패션을 그리라고 하면 대개 같은 게 나옵니다. 네온, 검정 가죽, 실루엣 없는 테크웨어. 어느 나라 도시인지 알 수 없는 옷이죠.

그래서 관통 장치를 하나 뒀습니다 — 미래 패션에 한복의 선을 남기기.

[도시인] 강변, 블루아워
[도시인] 강변, 블루아워 · 필름결 · Nano Banana Pro작품 보기 →

코트 앞섶이 저고리처럼 대각선으로 여며지고, 그 선을 따라 빛이 한 줄 흐릅니다.

[도시인] 밤 트램 안에서
[도시인] 밤 트램 안에서 · 픽셀곰 · Seedream 5.0 Pro작품 보기 →

트램의 봄버도 마찬가지예요. 소재와 조명은 완전히 미래인데 여밈은 저고리입니다.

[도시인] 비 오는 밤, 문을 나서며
[도시인] 비 오는 밤, 문을 나서며 · 네온무드 · GPT Image 2작품 보기 →

이건 액체 금속처럼 흐르는 트렌치인데, 떨어지는 선은 두루마기고 허리를 넓은 띠로 묶었습니다.

구조를 빌리되 재료와 빛은 미래로 두면 됩니다. 한복을 그대로 입히면 사극이 되고, 안 쓰면 국적 없는 SF가 되니까요.

멋있음은 옷이 아니라 자세에서 온다

[도시인] 고가 정원의 오후
[도시인] 고가 정원의 오후 · 종이학 · FLUX.2작품 보기 →

이 시리즈에서 제일 좋아하는 컷입니다. 60대 남성이 고가 정원 벤치에 앉아 팔을 무릎에 얹고 정면으로 카메라를 봅니다.

옷은 오트밀 울 코트 하나예요. 발광도 없고 반투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홉 장 중 제일 멋있습니다. 미래 도시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 젊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도시인] 수상 시장, 해질녘
[도시인] 수상 시장, 해질녘 · 클레이요 · Kling O1 Image작품 보기 →

수상 시장의 20대는 쪼그려 앉아 물에 손을 담그고 있습니다. 미래라고 다 꼿꼿이 서 있을 필요 없죠. 이 자세가 이 사람을 생활인으로 만듭니다.

[도시인] 옥상 정원의 밤
[도시인] 옥상 정원의 밤 · 모카포트 · Seedream 5.0 Pro작품 보기 →

옥상의 남자는 난간에 기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미래 옷은 편하게 입고 있어야 진짜 옷처럼 보입니다. 차렷 자세로 서 있으면 그때부터 의상 대여점 사진이 돼요.

배경은 흐릴수록 좋다

[도시인] 골목, 한 등 아래
[도시인] 골목, 한 등 아래 · 고구마 · Soul Cinema작품 보기 →

전부 85mm f/1.4로 지정하고 배경을 완전히 뭉갰습니다.

미래 도시를 또렷하게 그리면 배경을 보게 됩니다. 건물이 몇 층인지 차가 어떻게 뜨는지요. 뭉개면 사람만 남고, 도시는 색과 빛으로만 존재합니다.

이 시리즈는 도시 소개가 아니라 사람 소개라서 그게 맞았습니다.

[도시인] 새벽 해변
[도시인] 새벽 해변 · 별바다 · Grok Image작품 보기 →

해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출을 예쁘게 찍는 대신 역광으로 놓고 얼굴을 그늘에 뒀어요.

실패는 하나

트램 컷에서 인물이 요청과 다르게 나왔습니다. 한국인 20대를 적었는데 다른 인상이 왔어요.

다시 쓸 때 대문자로 국적을 앞에 박고 외모를 한 번 더 적었습니다 — a KOREAN man in his early 20s, East Asian features, black hair. 이런 건 문장 앞쪽에 둘수록 잘 먹힙니다.

세 세트를 다 만들고 나서

같은 도시, 같은 미래인데 형식만 바꿔서 세 번 그렸습니다.

  • 2055 증명사진(절제) — 이 도시에 어떤 일이 있는가
  • 2085 증명사진(과장) — 이 도시가 어떤 세계인가
  • 도시인 에디토리얼 — 이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셋 다 필요하더군요. 미래 도시를 한 장으로 보여주려 하면 대개 실패하는데, 형식을 바꿔가며 세 번 물으면 꽤 잡힙니다.

다음엔 정말로 같은 사람의 2055년과 2085년을 짝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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