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설화의 신들을 그려 보고 싶었는데, 검색해 보면 대개 무섭거나 웅장하게 그려져 있더군요. 구미호는 요염하고 저승사자는 위협적이고 용왕은 장엄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게 궁금했어요. 이 신들이 지금까지 여기 있었다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신도 세월을 겪었을 텐데요.
도깨비입니다. 새벽 세 시 편의점 계단에 앉아 캔을 마시고 있어요.
프롬프트 마지막에 tired rather than frightening을 적었습니다. 지쳐 있게 그리니 갑자기 이웃처럼 보이더군요. 방망이는 있는데 그냥 옆에 세워 뒀습니다.
저승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solemn and courteous, not threatening — 예의 바르게, 오래 기다린 사람의 자세로 그렸어요.
재밌는 건 공손하게 그리니 오히려 더 서늘하다는 겁니다. 위협하는 존재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의 바르게 기다리는 존재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구미호입니다. 본체는 완전히 평범한 코트 차림이에요. 꼬리 아홉은 어두운 유리에 비친 모습에만 있습니다.
이건 전에 정리했던 "이상한 건 하나만" 규칙의 응용인데, 여기서는 한 발 더 갔습니다 — 이상한 것을 반사에만 두는 것. 실물과 반사가 다르면 보는 사람이 두 번 봅니다.
산신령이 약수터에 앉아 있고 호랑이는 늙은 개처럼 발치에서 졸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신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바가지, 쓰레기통, 손글씨 안내판이었어요. 현대의 잡동사니가 있어야 "아직 여기 있다"가 성립합니다.
조왕신은 부엌 신인데, 선반에 정화수 한 그릇이 반쯤 잊힌 채 놓여 있습니다.
이 그릇 하나가 이 그림의 문장입니다 — 아직 놓기는 하는데 왜 놓는지는 잊었다. 신이 잊혀 가는 과정을 물건 하나로 적을 수 있었어요.
장승도 같은 장치입니다. 기둥에 묶인 리본이 다 바랬어요. 아무도 새로 묶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터줏대감입니다. 건물이 선 땅의 주인인데 지하 보일러실에서 뒤집은 궤짝에 앉아 있어요.
계량기와 배관 사이, 선반에 막걸리 한 종지. 이 신에게 남은 건 그게 전부입니다.
용왕도 그렇습니다. 방파제 테트라포드 사이에 몸을 감고 있고 비늘에 따개비가 붙어 있어요. 버려진 그물이 걸려 있고요. ancient and weary라고 적었습니다.
삼신할미입니다. 신생아실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일이 잘 되고 있는 신입니다. 간호사가 못 보고 지나가지만, 그건 잊혔다기보다 알 필요가 없다는 쪽에 가까워요.
여러분 동네에는 어떤 신이 남아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