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기 올린 글이 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조리개가 어떻고 색온도가 어떻고요.
이번엔 그런 얘기 없이 갑니다. 보면 아는 것들만 아홉 장 모았어요. 설명이 필요하면 실패한 겁니다.
선생님이 말하다 멈췄습니다. 다들 창밖을 보고 있고 한 명은 손가락으로 가리켜요.
첫눈은 혼자 보면 반쯤만 좋습니다. 교실이어야 완성돼요.
머리에 수건 터번, 얼굴은 발갛고, 눈은 반쯤 감겼습니다.
목욕탕에서 나와 마시는 바나나우유가 왜 유독 맛있는지는 아무도 설명 못 하지만 다들 압니다.
도시락에 김밥이 빽빽한데, 꽁다리 두 개만 뚜껑에 따로 놓여 있어요.
싼 사람 몫입니다. 이 두 조각이 이 도시락의 이야기 전부예요.
평상에 반으로 가른 수박, 의자 쪽으로 돌려놓은 선풍기, 바닥에 벗어둔 슬리퍼.
사람은 안 나오는데 방금까지 있었다는 게 다 보입니다. 잠깐 뭐 가지러 들어갔겠죠.
명절 아침입니다. 식탁이 아니라 바닥에 부탄 버너를 놓고, 신문지를 깔고, 한 사람은 뒤집고 한 사람은 계란옷을 입혀요.
전 부칠 때 식탁에서 하는 집은 없습니다.
시장 통닭입니다. 기름에서 바구니가 올라오는 순간이고, 뒤에 손글씨 가격표가 붙어 있어요.
이런 사진은 음식보다 가격표와 종이봉투가 중요합니다.
비 오는 날 파전과 막걸리. 한쪽 귀퉁이는 이미 찢겨 있습니다.
손도 안 댄 상은 광고 사진이지 우리 집 상이 아니죠.
학교 앞 문방구입니다. 이건 두 번 만들었어요.
처음엔 서양식 가게에 서양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문방구"라고만 쓰면 모델은 자기가 아는 문구점을 그려요.
다시 쓸 때 다 적었습니다 — 교복과 책가방, 무릎 높이 떡볶이 트레이, 뽑기 기계, 손글씨 한글 가격표, 좁은 골목. 우리한테 당연한 것일수록 더 자세히 적어야 합니다.
마지막은 첫 월급입니다. 봉투와 명세서 옆에 케이크 상자와 내복이 이미 놓여 있어요.
받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죠.
이번 아홉 장에 어려운 기법은 하나도 안 썼습니다. 대신 물건 하나씩만 신경 썼어요 — 꽁다리 두 개, 벗어둔 슬리퍼, 찢긴 파전 귀퉁이, 미리 사둔 내복.
여러분한테는 어떤 순간이 그런가요. 댓글로 알려주시면 만들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