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빛·렌즈·구도 같은 기법을 정리해 왔습니다. 이번엔 다른 걸 해봤어요. 기법이 아니라 발상입니다.
주제는 "이 세상에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아홉 개를 만들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상상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건 상상력이 아니라 디테일이더군요.
구름 정비사입니다. 구름에 밸브가 달려 있고 김이 새고 있어요. 그런데 이 그림을 성립시킨 건 구름이 아니라 낡은 작업복과 열린 공구함입니다.
프롬프트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 utterly matter-of-fact posture, as if this were routine maintenance. 놀라워하지 말라고요. 등장인물이 놀라면 관객도 안 믿습니다.
그림자 수선공은 제일 마음에 드는 컷입니다. 찢어진 그림자를 재봉틀로 꿰매요.
여기서 결정적이었던 건 the shadows have weight and texture like felt였습니다. 그림자를 만질 수 있는 재료로 규정하니 벽에 걸 수도 있고 이름표를 달 수도 있게 됐어요.
꿈 검역관입니다. 투명 상자 안에 집 한 채가 폭풍에 휘말려 있어요.
이 그림을 관료제로 만든 건 클립보드·도장·경고 표지입니다. "REJECTED 도장"이라고 한 줄 적었더니 갑자기 제도가 생겼어요. 꿈을 검사하는 기관이 있고, 규정이 있고, 반려되는 꿈이 있다는 게 한 번에 전달됩니다.
소리 채집가도 같은 방식이에요. 병 하나가 아니라 여러 병이 상자에 정리돼 있고 각각 이름표가 붙어 있어야 이게 직업으로 보입니다. 병 하나면 그냥 마법이고요.
시간 우체부입니다. 한 집은 한겨울 밤이고 옆집은 한여름 낮이에요.
바꾼 건 계절 하나뿐입니다. 집도 거리도 우체부도 전부 평범해요. 이상한 걸 두 개 이상 넣으면 그림이 산만해지고, 관객은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파도 조율사는 절반만 됐습니다. 기둥 근처 파도는 정연하고 멀어질수록 흐트러지게 하려 했는데 그 차이가 거의 안 나왔어요. 다이얼과 인물은 좋은데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가 그림에서 안 읽힙니다.
돌아보면 프롬프트에서 그 대비를 한 문장 안에 끼워 넣은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핵심이면 따로 떼서 강조했어야 했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직업을 만들어 보시겠어요. 저는 다음에 소문 배달부를 해볼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