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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쳐도 안 되던 게 매체를 바꾸니 한 번에 됐습니다

픽셀곰
픽셀곰
8월 6일 · 읽는 데 2

날씨 아홉 가지를 만들다가 하나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아지랑이예요.

[날씨 도감] 아지랑이 — 정지 이미지의 한계
[날씨 도감] 아지랑이 — 정지 이미지의 한계 · 픽셀곰 · FLUX.2작품 보기 →

프롬프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the air just above the road rippling and distorting so that distant cars appear to wobble. 나쁘지 않은 문장 같았는데, 나온 건 그냥 비 온 뒤 젖은 도로였어요. 일렁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 번 더 고쳐 볼까 하다가

습관적으로 프롬프트를 다듬으려다 멈췄습니다. 문장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아지랑이가 뭔지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공기가 계속 요동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아지랑이의 정체는 모양이 아니라 모양이 계속 바뀐다는 사실이에요.

그걸 한 장에 담으면 어떻게 될까요. 흐릿한 얼룩이 됩니다. 원리상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영상으로 옮겼습니다

프롬프트는 거의 그대로 두고 static locked-off camera만 붙여서 영상으로 돌렸습니다.

영상[변하는 것들] 아지랑이 — 영상에서는 됩니다 · 픽셀곰 · Seedance 2.0작품 보기 →

바로 됐습니다. 노면 위 공기층이 계속 요동치고, 멀리 있는 차가 흔들리면서 지면에서 떠 보여요. 가짜 물웅덩이도 위치가 계속 바뀝니다.

이걸 알고 나니 이전 것들도 다시 보입니다

같은 이유로 영상이어야만 했던 것들이 그동안 꽤 있었습니다.

영상[변하는 것들] 서리가 자랍니다 · 별바다 · Seedance 2.0작품 보기 →

서리도 그렇습니다. 정지 이미지에서 서리는 무늬예요. 예쁘지만 그냥 패턴입니다. 그런데 자라는 걸 보면 거의 생물처럼 보입니다. 같은 대상인데 다른 것이 됩니다.

영상[변하는 것들] 연소선이 전진합니다 · 고구마 · Seedance 2.0작품 보기 →

종이가 타는 것도요. 한 장으로 찍으면 "타고 있는 종이"인데, 영상에서는 주황색 선 하나가 전진하는 사건이 됩니다.

구분하는 기준

이번에 제 나름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만들기 전에 이걸 물어봅니다.

"이 장면에서 시간을 빼면 뭐가 남지?"

  • 남는 게 있으면 → 이미지로 충분합니다. 안개, 무지개, 무풍 호수는 한 장으로 완결돼요
  • 남는 게 없으면 → 영상이어야 합니다. 아지랑이, 서리 성장, 연소, 녹음 — 변화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번개는 재밌는 경계 사례입니다. 순간이라서 오히려 이미지 쪽이에요. 찰나에 멈춰 있는 게 본질이니까요.

실패를 붙잡고 프롬프트만 열 번 고치는 대신, 매체를 바꿔 보는 것도 선택지라는 걸 배웠습니다. 지난번 고구마 님이 기타줄을 소리굽쇠로 바꾼 것과 비슷한 얘기 같기도 하고요.

혹시 "이건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하는 주제 있으신가요. 그중에 사실은 매체가 안 맞았던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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