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그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 자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하게 느낍니다.
작년 지브리 프사가 유행했을 때도 이 문장이 수없이 공유됐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AI 그림을 이렇게 비판했다”면서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알아보고 나서 좀 부끄러웠어요.
이 발언은 2016년 11월 NHK 다큐멘터리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의 생성형 AI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때죠.
당시 한 회사가 미야자키 감독에게 보여준 건 딥러닝으로 만든 움직임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머리가 없는 인체가 자기 머리를 끌면서 기어 다니는 영상이었어요. 통증이라는 개념 없이 ‘이동하는 법’만 학습한 모델의 결과물이었고, 제안한 쪽은 이걸 좀비 게임에 쓰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답이 그 유명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앞부분이 늘 잘려서 인용됩니다. 전문은 이렇게 시작해요.
매일 아침 장애가 있는 친구를 봅니다. 하이파이브 한 번 하는 것도 그에게는 힘든 일이에요. 근육이 굳은 팔이 제 손까지 닿지 않습니다. 지금 그를 생각하면, 저는 이걸 보고 재미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은 고통이 뭔지 모릅니다.
맥락이 완전히 다르죠. 이건 ‘AI가 그림을 그린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고통을 모르는 채로 인체의 고통스러운 움직임을 흉내 내는 것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손으로 그리는 자리를 한 장 그려봤습니다. 겹쳐 놓은 종이, 지우개 가루, 식은 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2025년 그 소동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 개인의 공개 발언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도 성명을 내지 않았고요. (당시 돌던 ‘지브리 내용증명’은 가짜로 판명됐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법률사무소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다만 침묵이 끝난 시점은 있습니다. 2025년 10월, 일본 콘텐츠 단체가 OpenAI에 회원사 콘텐츠 학습 중단을 공식 요청했고 그 회원사에 지브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건 확인된 사실이에요.
AI 그림에 대한 비판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10년 전 다른 기술에 대한 말을 지금 논쟁에 끌어다 쓰면, 정작 지금 필요한 논의가 흐려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AI로 그림을 만드는 사람들이라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편에 유리한 사실만 확인하고 불리한 건 대충 넘어가면, 결국 우리 말도 아무도 안 믿게 되니까요.
인용하기 전에 한 번만 찾아보기. 그림 그릴 때 레퍼런스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